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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혹은 여행처럼 - 정혜윤

S o d a m 2018. 10. 1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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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혼자 있을 때 읽으려고 챙겨간 책인데 결국 서울 올라와서 읽었다.. 읽을리가 없지.. 제주도 여행 내내 가방 속에 들어있었던 셈.


가끔 서울에서 놀았을 뿐인데 여행 다녀온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새로운 곳에 가거나 사진이 잘 나오거나 날씨가 좋았을때 주로 그렇다.

그런 날에는 잠들기전에 '아 꼭 여행 갔다 온거 같네.' 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여행에서 꼭 좋은 상황만 오는건 아닌데 여행 = 좋은일만 일어남 이라고 무심결에 생각했던것 같다. 결국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의미부여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책을 읽을 때 읽는 나는 나지만 또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보르헤스가 셰익스피어를 읽는 자는 그 순간 셰익스피어고 호머를 읽는 자는 그 순간은 호머라고 했던 것처럼, 여행지에서 우리는 우리지만 우리가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지만 수없이 많은 영혼이다.




-



나는 누군가 나 대신 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뭐라도 해주길 꿈꾼다.


여행지에서 나는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드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들어주길 원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선 길을 잃으면 낙담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세상 만물을, 차창 밖을 지나가는 여인의 뒷모습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그 고장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낼 줄 안다. 

그런데 삶 속에선 내 고장의 가장 좋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몰라본다.


여행지에서 나는 나 자신이 이방인임을 당연시한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행여라도 이방인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길을 오래전 누군가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앉았던 식당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나의 존재와 남의 존재가 연결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연결이 아니라 나와 남의 분리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설레고 얼마나 자주 탄성을 지르던가?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기쁨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얼마나 자주 무감각하던가?


여행지에서 나는 해의 뜨고 짐 같은 가장 단순한 풍경에서도 위대한 지구의 운동 법칙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눈앞의 일에 급급하느라 어떤 법칙에도 진리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프롤로그, 왜 인생을 여행이라고 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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