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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김사과

by S o d a m 202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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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 처음 읽은 책이 조금 무겁고 너무나 현실적인감이 있지만.. 그래도 나를 돌아보며 재밌게 읽었다. (아 물론 마냥 재밌지만은 않았음..) 케이가 하는 행동이나 말에서 내가 보일때가 몇번 있었다. 책을 하루에 한권 다 읽는 경우는 잘 없는데 긴 분량임에도 집중해서 읽어내려갔다. 

 

 

 

 

그건 넓이도, 무게도, 시간도 없는 거였어. 하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어. 그리고 그건 진짜 아름다웠어...

 

 

 

그 결과가 내가 아닌가? 그렇다. 나는 결과일 뿐이다. 내 탓이 아니라고.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한국은 너무너무 빠르게 변한 나라라서 한두살만 차이가 나도 전혀 말이 안통하거든. 그러니까 평범한 상태인 거야, 말이 안 통하는게. 이상하지? 근데 안 이상해. 말 같은거 안 통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어. 그래서 오히려, 말이 통하는 상황이 어색해. 진짜로, 막 어색하다니까.

 

 

 

여행지가 된 도시에서는 사람들도 여행자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바도 세상을 일련의 풍경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풍경이 된 세상은 아름답다. 거리에 가득 찬 쓰레기에서 고급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인까지, 여행자의 시선 속에서 세상은 공평하게 아름답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행자는 세상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모든 것에서 한발자국 떨어진 채로 이미지로서의 세상을 경험한다. 이미지 너머의 세상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행자는 풍경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여행자의 바깥에 위치한다. 즉, 세계와 나는 단절되어 있다.

 

 

 

우리는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것은 소유했다는 환상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소비를 멈추지 않는 것으로 그 환상을 유지한다. 그렇게 환상이 유지되는 동안,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탕진되며 마침내 고갈에 이른다.

 

 

 

그는 또 한번 노력 따위 아무 쓸모 없다고 느꼈다. 그저 몸의 힘을 풀고 부드러운 물결 위에 자신을 올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졸고 있는 사이, 흐르는 물이 그를 어딘가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줄 것이다.

 

 

 

그럴 거라 믿어. 너는 운이 좋으니까. 네가 그랬잖아. 항상. 넌 운이 좋은거 같다고. 근데 너는 네가 운이 좋은 걸 어떻게 알아? 그게 느껴져?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너는 언제나 너에 대해서 확신이 있잖아. 그게 참 멋있어. 나는 그렇지가 못하거든. 그래서 자꾸 그런사람들한테 반하나봐. 다른 사람들을 자꾸 따라가게 되니까. 근데 그게 내 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왜냐하면 그렇게 따라가다보면 좋은 일이 생기거든. 너를 만난 것도 그렇고.

 

 

대학이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야. 써머 너도 똑같이 말했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가끔은 뭔가를 끝낼 필요가 있는 거 같아. 내가 뉴욕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 것처럼. 슬프지만, 가끔은 그런게 필요한 거 같아. 내 말은, 다시 보기 위해서는 어쨌든 헤어져야 하지 않느냐는 거지.

 

 

그 독보적인 우월함 앞에서 케이가 마음 놓고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점이 둘의 사이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인지도 몰랐다. 즉, 돌이킬 수 없는 격차가 둘 사이에 반영구적 평화를 형성했던 것이다. 서로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아무려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재영이 남자친구인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의대생에게 선물로 받은 이백만원이 넘는 가방을 들고 나온 날이었다. 그날 케이는 재영이 자신과 완전히 다르며, 앞으로도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거라는 걸 아무 억울함 없이 인정했다. 그러자 허탈함과 함께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심지어 이렇게 잘난 친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 당연하다. 거기 답이 있을 리 없다. 시작부터 잘못된 수식이니까.

 

 

촌스럽고 돈밖에 모르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될 재능도 용기도 없는 소심한 사람들의 세계. 모든 것을 타인의 눈을 통해 선택하는 사람들의 세계. 유행하는 노래를 듣고, 유행하는 텔레비전 쇼를 보고, 유행하는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멍청이들.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부모였고, 형제이자 이웃이었으며, 결국 자신들이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에게도 미덕은 있다. 그를 통해 그가 속한 시대의 리얼리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걔들은 성공하겠지. 그럼 나는? 사실, 나는 성공하기 싫은데. 아니, 그렇다고 실패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냥 적당히. 어, 적당히 지금처럼 살면 안되나?

 

 

미친다는 건 문을 열고 들어가는거야. 그리고 문을 잠근 다음에 열쇠가 없는 거.

 

 

"이것 봐. 넌 이해 못해. 망했던 적? 그니까 지금은 안망했다는거 아냐. 있잖아 경희야. 난 망해본 적이 업어. 망하는게 뭐지 몰라. 왜냐면 처음부터 망했거든. 난 태어날때부터 인생이 쭉 이런 상태였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 그런 느낌 알아? 계속, 계속 계속, 좆같을 거라는 느낌.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이는 그런 거 너 모르잖아."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 내리라는 요구를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하늘 한가운데잖아요? 여기서 내리면 나는 죽잖아요?

 

 

너가 아까 그랬지. 흘러가는대로 살아왔다. 근데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운이 좋았나보다. 그게 뭔 뜻인지 알아? 니가 평탄하게 살아왔다는 얘기야. 지원이 걔는 니 말이 아예 이해가 안될걸. 뭐? 흘러가는 대로 살아? 야, 생각을 해봐. 지원이 걔가 지 인생 흘러가는 대로 살았으며 지금쯤 뭐 하고 있을거 같아?

 

 

진짜 꿈 같은 날들이었지. 물론 듣는 사람한테는 지루한 옛날이야기겠지만. 겪어본 적도 없는 애들한테는 아예 이해가 안될 거고. 그래, 어쩌면 난 그 기억에 매달려서 살아가는 거 같아. 근데 그럴 수밖에 없어. 너무나도 강렬했거든. 다 타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야.

 

 

 

 

 

 

그러니까 사랑이라는건, 그런 이벤트를 포함하지만 그 이벤트들의 총합 이상인 지속적인 작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이란 복잡하고 모순적인 거야. 단순하게 확 타오르는 불꽃같은 게 아니야. 계속해서 절정에 있는 게 아니라고. 그건 불가능해.

 

 

여기는 천국이야. 그런데 왜 나는 울지? 이건 결국 같은 얘기야. 모든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아? 왜 다 무너져내렸는데 아무것도 끝장나지 않아? 왜 끝장이 났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게 없는거냐고? 분명히 뭔가 잘못된 거야.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거라고. 그런데 여기가 천국이래. 근데 천국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잘못된 게 있다면 바로 너야. 행복해 하지 않는 너라고. 슬퍼하고, 화가 나는, 이 천국을 부수고 싶어 하는 너야. 이 천국을 의심하는 너야. 왜냐하면 여기가 천국이라니까!

 

 

수족관 속에 있는 물고기가 수족관을 부수면 어떻게 돼? 죽겠지. 뻔하지. 하지만 수족관 속에 있는건 살아있는거야? 그래, 나는 이게 묻고 싶은 거야.

 

 

솔직히 여기가 안이라는 것도 몰랐어.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어. 바깥이라는 게 있어? 그래? 거기가 어딘데? 보이지가 않잖아. 글서 여기에 있는거야.

 

 

어떻게 여기가 천국이야? 내가 진짜 원하는 단 한가지가 빠졌는데? 아아, 나 이제 진짜 알겠어. 여기가 왜 이렇게 좋은지. 그건 제일 중요한 한가지가 빠져있으니까. 내가 원하는 거, 내가 진짜 원하는 거, 그게 없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평화로운 거야. 이 평화는 내가 원하는 그 딱 한가지를 버리고 얻은 거야. 그러니까, 여기는 천국이 아니야. 여기는 지옥이야. 여기는 지옥이야. 써머. 근데 문제가 뭔지 알아? 도대체 뭐가 빠져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야. 완벽한데, 여기는 너무 완벽한데...

 

 

천국에서, 김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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